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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연영초(Trillium tschonoskii Maxim.)는 백합과[Liliaceae; 멜란티움과(Melanthiaceae, APG Ⅳ)]에 속하는 다년생 초본 식물이다(KNA 2024). 한반도에는 연영초속(Trillium)으로 연영초(T. camschatcense Ker Gawl.)와 큰연영초 단 두 종만이 자생하고 있다(KNA 2024). 큰연영초는 동아시아 지역의 일본, 중국, 대만 등에 자생지가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울릉도에만 자생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Ahn et al. 2007;KNA 2024). 5~6월에 돌려나기한 잎 중앙에서 길이 2~4cm의 꽃대가 1개 나와 끝에 지름 약 4cm 정도의 꽃 한송이가 피며 꽃색은 흰색 또는 분홍색이다. 큰연영초는 관상가치가 뛰어나며, 반그늘의 정원에 활용할 수 있는 잠재적 관상식물이다. 큰연영초는 울릉도 전역에 많은 개체가 자생했던 것으로 평가되었으나, 도로 건설 등으로 상당한 자생지가 파괴된 것으로 보고되었다(Hyun 2002). 이에 따라 국내 제한된 점유면적과 생육지 면적의 지속적인 쇠퇴로 평가하여 한국 관속식물 적색목록의EN B2ab(ⅲ) 범주에 포함되었다. 이는 IUCN Red List 범주(categories) 및 기준(criteria)에 근거하여 이용 가능한 최선의 증거가 5개(A에 서 E까지)의 기준(criteria) 중 어느 하나라도 충족될 때 해당 분류군은 야생에서 “위기”에 매우 높은 위험에 직면한 것으로 간주된다는 것을 의미한다(KNA 2021).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원예적 가치가 매우 뛰어난 큰연영초의 유전자원 보존 및 지속적 활용기반을 구축하고자 종자의 휴면과 발아특성을 조사하였다.
재료 및 방법
본 연구에 사용된 종자는 2012년 6월 6일, 2013년 7월 23일 경기도 용인 한택식물원에서 채종하였다. 2012년에 채종한 종자는 과실을 수집한 후 실험실에서 약 2주간 후숙(20~25℃)을 시키고 종자를 분리하여 기본특성을 조사하였다. 이때 기본특성은 길이 2.9±0.06mm, 너비 1.7±0.04mm, 100립중 392.4±9.22mg 이었다(Fig. 2A~C). 2013년에 채종한 종자는 phenology, 온도, 저온처리, GA3 처리 실험에 사용되었다. Phenology 실험은 채종한 종자를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옥상정원의 노지에 묻어 조사하였다. 약 100개의 종자를 모래와 섞은 후 시판용 모기망에 넣고 노지에 묻었고, 2013년 7월 23일(채종 당일)부터 2014년 8월 23일까지 매달 5개의 종자를 꺼내어 종자와 배(embryo)의 길이를 측정하였다. 자연조건에서의 발아율, 유묘출현율을 조사하기 위해서 20립 3반복의 종자를 8cm 플라스틱 화분에 원예상토(Plant World, Nongwoo Bio, Suwon, Korea)를 채우고 약 5cm 깊이로 파종하였다. 발아율은 2013년 7월 23일부터 2014년 8월 30일까지, 유묘출현율은 7월 23일부터 2015년 4월 30일까지 조사하였다. 자연상태의 온도변화를 data logger(Watch Dog Model 450, Spectrum Technologies, Plainfield, IL, USA)로 기록하였다. 온도 처리 실험에서는 5℃, 15/6, 20/10, 25/15℃로 설정한 멀티룸챔버 (DS-13MCLP, Dasol Scientific, Hwaseong, Korea)를 이용하였다. 챔버의 광주기는 12시간 광조건(30~40μmol·m-2·s-1) 으로 설정되었다. 저온 습윤 처리는 종자를 5℃에서 0, 4, 8, 12주간 저장한 후 25/15℃에 배양하였고, GA3 처리는 종자를 0, 10, 100, 1000mg·L-1 농도로 24시간 침지한 후 25/15℃에 배양하였다. 온도, 저온처리, GA3 처리 실험은 15립 3반복하여 완전임의배치법으로 수행하였다.
일본에 자생하는 연영초속의 Trillium camschatcense가 종자발아 이후에 배축휴면으로 인하여 유묘출현이 지연된다는 보고(Kondo et al. 2011)가 있었기에, 2013년 7월 23일 약 100립의 종자를 노지에 매장한 후 2014년 9월 30일, 12월 9일, 12월 30일 세 번에 걸쳐서 발아된 종자를 꺼내어 실험실에서 배양하였다. 일부 종자는 부패하거나 소실되어 수량이 부족하였으며, 10립 2반복으로 25/15℃에 배양하면서 떡잎의 출현을 3주간 관찰하였다. 실험 결과는 SAS(SAS 9.4, SAS Institute Inc., USA)를 사용하여 분산분석 후 5% 유의수준에서 Duncan 의 다중검정법(Duncan’s multiple range test)으로 분석되었으며, 그래프는 Sigmaplot(Grafiti LLC., Palo Alto, CA, USA)으로 작성되었다.
결과 및 고찰
본 연구에서 큰연영초 종자는 온도, 저온처리, GA3 처리 실험에서 8주이상 배양하였음에도 전혀 발아하지 않았다(data not shown). 채종한 종자를 잘라 현미경으로 관찰한 결과 종자 내부의 배는 종자 길이의 10%가 안되는 미성숙배를 가지고 있었다(Fig. 1, 2D). 자연상태에서 배발달, 발아, 유묘출현의 phenology를 조사한 결과, 채종한 당해년도에는 배의 발달이 미미하였고 발아는 전혀 관찰되지 않았다(Fig. 1). 야생식물의 종자에서 수분 흡수에 문제가 없는 종자가 약 4주간의 배양기간 동안 발아하지 않을 경우, 생리적휴면(physiological dormancy, PD)이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Baskin and Baskin 2004). 또한 채종 당시의 종자 내부의 배가 추가적인 신장을 한 후 발아하게 되면 형태적 휴면(morphological dormancy, MD)이 있는 것으로 판단한 다(Baskin and Baskin 2014). 따라서 큰 연영초 종자는 생리적휴면과 형태적휴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형태생리적휴면(morphophysiological dormancy, MPD)으로 분류할 수 있다.
자연상태에서 미성숙배의 신장은 겨울철이 지나고 다음 년도 5월까지 큰 변화가 없다가, 온도가 높게 유지되는 7월 1일에 22%까지 신장하였고, 8월 15일에 85%까지 신장하였다(Fig. 1). 미성숙배가 성장함에 따라 8월 8일에는 38%, 8월 30일에는 98%의 종자가 발아하였다(Fig. 1, 2F). 종자가 발아하였으나, 2014년도에는 유묘가 출현하지 않았다. 큰연영초 종자는 발아된 상태로 두 번째 겨울철을 지나고(Fig. 2G~H), 종자탈리 3년 차인 2015년 4월에 유묘가 출현하였다(Fig. 1, 2I). 발아된 상태로 겨울철 저온기간을 보내고 이듬해 봄에 발아하는 일부 식물은 배축휴면(epicotyl dormancy)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된 바 있다(Baskin and Baskin 2014;Kondo et al. 2011;Rhie et al. 2019).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 발아된 종자를 2014년 9월 30일, 12월 9일, 12월 30일에 실험실로 입실하여 배양한 결과, 9월 30일에 입실한 종자에서는 유묘가 출현하지 않았다. 그러나 노지에서 저온처리를 받은 기간이 길어질수록 유묘출현율이 높아진 것을 확인하였다(Table 1). 따라서 발아된 이후에도 일정기간의 저온요구도가 충족되어야 떡잎이 출현하는 배축 휴면이 있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형태생리적휴면은 미성숙배가 성장하는 온도조건, 종자의 휴면을 타파하기 위한 온도의 조건과 순서, GA 처리를 통한 휴면 타파 유무 등에 따라 크게 9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Baskin and Baskin 2014). 본 연구에서는 종자가 탈리된 후, 첫 번째 겨울 철 저온기간을 지나고 이듬해 여름기간 동안에 미성숙배가 신장하고 발아가 진행되었다(Fig. 1). 그러나 발아된 종자는 두 번째 년도의 겨울철 저온기간을 거쳐야 배축휴면이 타파되어 이후에 떡잎이 출현하였다. 따라서 종자의 휴면을 타파시키기 위해서는 ‘저온+고온+저온’의 순차적인 온도의 변화가 필요하고, 미성숙 배는 고온기간 동안 발달하는 deep simple double MPD로 분류할 수 있다.
일본에 자생하는 동일속의 Trillium camschatcense 종자 (Kondo et al. 2011), Convallaria keiskei 종자(Kondo et al. 2015)도 deep simple double MPD로 보고된 바 있다. 이는 한국과 일본에 자생하는 동일속의 식물이 같은 휴면유형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종자발아와 유묘가 출현하는 중간에 ‘가을-겨울’의 계절적인 변화가 존재하였다. 이것은 가을 동안에 충분한 근권부를 형성하고 이듬해 주변 식물들로 인한 그늘이 형성되기 전에 신속하게 유묘를 출현시켜 충분한 광합성을 하기 위한 생존 전략으로 판단된다(Kondo et al. 2011). 생태적인 측면에서, 충분한 근계를 형성하고 이듬해 봄을 맞이한다는 것은 초기 유묘의 생장에 필요한 물과 양분을 신속하게 공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본 연구를 통하여 한반도에 자생하는 Trillium속의 큰연영초도 deep simple double MPD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향후 이러한 유형의 종자휴면 연구와 실용적인 번식을 하는데 유용한 자료가 될 것이다.